훈민정음을 만들다
왕이 된지 26년이 되던 해인 1443년에 세종은 오랜 연구와 실험을 거쳐 드디어 조선의 글자를 만들었어요.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으로 그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불렀지요.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과 어우러지는 글자가 없고, 중국의 한자는 어려워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국사편찬위원회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려 하자 우려했던 대로 조정 신료들의 반발이 빗발쳤어요.
그 중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라는 사람이 학사들을 대표로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어요.
최만리의 주장은 새로운 글자를 제작하고 사용하게 되면 결국 중국을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예로부터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나라는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진 등으로 이들은 중국 중심의 가치를 신봉하지 않는 나라였다는 것이에요.
조선은 새롭게 나라를 건설하고 모든 제도를 유교적 가치에 따라 정비하고 있는데,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결국 유교적 가치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유학자들 또한 쉬운 언문만을 습득하고 학문에 필요한 어려운 한자를 배우려 하지 않아서, 결국 조선이 목표로 하는 유교 국가를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세종은 최만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어요.
새로운 글자를 만든 목적은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유교적 가치를 쉽게 이해하여 유교 국가를 더 빨리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어요.
언문은 모든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해 만든 글자인데,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일은 성군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오.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백성이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 효자, 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인데 이를 어찌 오랑캐의 짓이라 할 수 있겠소?
결국 세종은 신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전국에 널리 알렸어요.
그리고 훈민정음으로 된 책들을 편찬하여 새로운 글자가 보다 완벽한 문자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어요.
훈민정음 창제는 단순히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조선의 문자인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어요.
보다 중요한 사실은 훈민정음의 보급으로 아녀자와 노비들까지 글을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것이에요.
이제 새로운 글자로 소통하기 시작한 조선의 백성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던 세종대왕! 지금도 한글은 배우기 쉽고 활용성이 높은 과학적인 글자로 세계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어요.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생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우리가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