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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세종대왕(King Sejong) &amp;gt; 세종대왕 &amp;gt; 세종대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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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세종대왕 (2026-03-21 01:31:3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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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훈민정음을 만들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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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p>왕이 된지 26년이 되던 해인 1443년에 세종은 오랜 연구와 실험을 거쳐 드디어 조선의 글자를 만들었어요. </p><p>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으로 그 글자의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불렀지요.</p><p>“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과 어우러지는 글자가 없고, 중국의 한자는 어려워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p><p><br /></p><p><br /></p><p><br /></p><p><img src="http://sejong.world/data/editor/2603/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4028_0664.jpg" title="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4028_0664.jpg" alt="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4028_0664.jpg" /> </p><p>훈민정음 해례본</p><p>국사편찬위원회</p><p><br /></p><p><br /></p><p><br /></p><p>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보급하려 하자 우려했던 대로 조정 신료들의 반발이 빗발쳤어요. </p><p>그 중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라는 사람이 학사들을 대표로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어요.</p><p><br /></p><p>최만리의 주장은 새로운 글자를 제작하고 사용하게 되면 결국 중국을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p><p>예로부터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나라는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진 등으로 이들은 중국 중심의 가치를 신봉하지 않는 나라였다는 것이에요.</p><p>조선은 새롭게 나라를 건설하고 모든 제도를 유교적 가치에 따라 정비하고 있는데,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결국 유교적 가치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었어요. </p><p>유학자들 또한 쉬운 언문만을 습득하고 학문에 필요한 어려운 한자를 배우려 하지 않아서, 결국 조선이 목표로 하는 유교 국가를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p><p><br /></p><p>세종은 최만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어요. </p><p>새로운 글자를 만든 목적은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유교적 가치를 쉽게 이해하여 유교 국가를 더 빨리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었어요.</p><p><br /></p><p>언문은 모든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해 만든 글자인데,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일은 성군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오. </p><p>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백성이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 효자, 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인데 이를 어찌 오랑캐의 짓이라 할 수 있겠소?</p><p><br /></p><p>결국 세종은 신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전국에 널리 알렸어요. </p><p>그리고 훈민정음으로 된 책들을 편찬하여 새로운 글자가 보다 완벽한 문자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어요.</p><p>훈민정음 창제는 단순히 중국의 문자인 한자를 조선의 문자인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어요. </p><p>보다 중요한 사실은 훈민정음의 보급으로 아녀자와 노비들까지 글을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것이에요. </p><p>이제 새로운 글자로 소통하기 시작한 조선의 백성들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p><p><br /></p><p>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던 세종대왕! 지금도 한글은 배우기 쉽고 활용성이 높은 과학적인 글자로 세계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어요. </p><p>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의 생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p><p>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우리가 사랑하고 아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아닐까요?</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3-21T01:31:3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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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새로운 글자를 연구하다</title>
<link>http://sejong.world/kingsejong/4</link>
<description><![CDATA[<p>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마음은 마침내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어요. </p><p>세종은 백성들이 한자라는 배우기 어려운 글자에 막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어요. </p><p>급기야 모든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p><p>하지만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p><p>우선은 글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음운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확보해야 했어요. </p><p>그리고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이 당시의 중국을 따르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신하들의 반대도 극복해야 했어요.</p><p><br /></p><p>세종은 먼저 집현전 학사였던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등에게 명하여 음운학을 연구하게 했어요. </p><p>그리고 중국에 사신으로 간 집현전 학사들에게는 언어 연구에 필요한 책들을 구해오게 하였지요. </p><p>또한 명의 학자로부터 음운학과 관련된 학문을 배워오게 하였어요. 마침내 </p><p>세종은 학사들이 구해 온 책에 담겨 있는 지식을 토대로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3-21T01:22:01+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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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삼강행실도를 편찬하다</title>
<link>http://sejong.world/kingsejong/3</link>
<description><![CDATA[<p>세종이 왕이 되고 10년이 되던 해에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p><p>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세종은 이런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유교 덕목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어요. </p><p>그리고 충효사상이 담겨 있는 책들을 간행하여 백성들에게 전파하고자 했어요.</p><p><br /></p><p>세종은 『효행록』과 같은 책을 펴내 백성들이 이를 읽고 깨우치기를 원했어요. </p><p>그러나 한자로 쓰인 책을 백성들이 읽고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p><p>그래서 쉽게 내용을 알 수 있게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간단한 설명을 써 넣은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편찬했어요. </p><p>그리고 전국에 보급하였지요.</p><p><br /></p><p><br /></p><p><img src="http://sejong.world/data/editor/2603/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3463_8283.jpg" title="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3463_8283.jpg" alt="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3463_8283.jpg" /> </p><p>삼강행실도</p><p>국립중앙박물관</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3-21T01:18:4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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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세종대왕 와웨에 오르다</title>
<link>http://sejong.world/kingsejong/2</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ejong.world/data/editor/2603/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2916_6109.jpg" title="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2916_6109.jpg" alt="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2916_6109.jpg" /> </p><p><br /></p><p>세종대왕</p><p>1397년(태조6) ~ 1450년(세종32)</p><p><br /></p><p><br /></p><p>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조선을 건국하였어요. </p><p>그런데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났어요. </p><p>조선 건국에 공이 많았던 이방원은 공신 명단에 오르지 못했어요. </p><p>게다가 막내였던 이복 동생(방석)이 세자가 된 것에 이방원은 불만이 무척 컸어요.</p><p><br /></p><p>이방원은 결국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들을 동원해 정변을 일으켰어요. </p><p>그리고 정도전과 세자 방석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지요. </p><p>이를 ‘왕자의 난’이라 해요. </p><p>이후 이방원은 결국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태종이에요. </p><p>태종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자 하였어요.</p><p><br /></p><p>태종의 뒤를 이어 세종이 왕이 되었어요. </p><p>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은 아버지의 경우와 달리 정변 없이 평화롭게 왕위를 이어받았지요. </p><p>덕분에 세종은 훨씬 더 평화롭고 안정된 방식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었어요.</p><p>1420년, 세종은 왕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학문과 나라의 정책을 연구하는 집현전을 설치하였어요. </p><p>집현전 학사는 과거에 합격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고 유능한 사람들 가운데 선발했어요. </p><p>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이 일정기간 동안 집현전에서만 근무하도록 하여 전문성을 쌓을 수 있게 했어요. </p><p>집현전을 통한 인재 양성과 더불어 세종은 농업을 장려하고 다양한 천문 과학 기기를 개발하여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어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3-21T01:13:50+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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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세종대왕, 훈민정음을 창제하다</title>
<link>http://sejong.world/kingsejong/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sejong.world/data/editor/2603/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2237_3349.JPG" title="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2237_3349.JPG" alt="f8a96dbf30a1b033d7db1386e1744e79_1774022237_3349.JPG" /> </p><p>집현전(서울 종로구)</p><p><br /></p><p><br /></p><p>“전하! 어찌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오랑캐가 되려 하십니까?”</p><p><br /></p><p>“오랑캐라니요?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는 것은 국왕이 할 일! 내 앞 길을 막지 마세요!”</p><p><br /></p><p>많은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자를 만든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을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6-03-21T01:02:4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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