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사람들은 훈민정음으로 무엇을 기록했을까?
세종대왕은 1445년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에게 『용비어천가』를 편찬하도록 해요.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표하기 전의 일이에요.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으로 된 최초의 기록물인 셈이죠. 그 책에는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을 포함하여 6대 선조의 업적을 125장의 시로 표현하고 있어요. 『용비어천가』를 훈민정음으로 지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조선 왕조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게 된 정당성을 양반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용비어천가』가 편찬된 이후 한문으로 된 불교와 유교 관련 책들도 훈민정음으로 번역되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책 이름 뒤에는 ‘언해(諺解)’라는 말이 붙어요. ‘언해’란 당시 ‘언문(諺文)’이라 불리던 훈민정음으로 번역했다는 의미이지요. 불경으로는 『법화경언해』가 대표적이며, 유교 경전은 『논어』와『맹자』등의 언해가 있어요.
법화경언해
국립한글박물관
불교와 유교 관련 책 이외에도 중국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 학습 교재에도 훈민정음이 사용되었어요. 어려운 외국어 발음을 훈민정음으로 읽기 쉽게 적어놓은 것이죠.
이외에도 부녀자들을 위한 요리책도 훈민정음으로 펴냈습니다. 그 예로『음식방문』이란 책을 들 수 있어요. 이 책에는 떡볶이, 만두 등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있답니다.
조선 후기에는 국왕이 백성들에게 교서를 내릴 때도 간혹 훈민정음을 사용했어요. 대표적인 왕이 선조예요.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에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훈민정음으로 된 교서를 발표했어요. 당시 포로가 된 사람 중에 일본군에 협조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교서에는 어쩔 수 없이 포로가 된 사람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고, 포로를 구출해오는 사람은 신분에 상관없이 벼슬을 주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한편, 조선 후기 민간에서는 『홍길동전』,『심청천』과 같은 한글 소설이 많이 편찬되었어요. 이외에도 부녀자들을 위한 요리책도 펴냈습니다. 그 예로『음식방문』이란 책을 들 수 있어요. 이 책에는 떡볶이, 만두 등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있답니다.
음식방문
국립한글박물관